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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 Muhn 문범강 (2)—조선화 연구가 / 큐레이터

그는 화가로서 활동하던 중 또 한 번의 도전을 시도한다.   도전이 그의 삶 앞에 불쑥 나타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뜻밖의 분야의 연구에 돌입하게 된다.   미술사학자도 아닌 그가 평양미술, 그것도 조선화라는 낯선 분야의 연구에 새롭게 몸을 던진다. 

조선화는 평양의 동양화를 일컫는 명칭이다.

2009년 어느날 미국에서 조선화 한 점을 본 후 충격을 받아 이 분야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급격하게 올인하게 된다. 

화들짝 뛰어드는 이런 충동적 결정은 화가로서의  그의 감지력의 확신에서 비롯됐다.   도박판에 목돈을 걸만큼 그림에 대한 자신의 눈을

믿었기에 전혀 새로운 분야였지만 과감하게 덤벼들었고 거침없이 헤치고 나갔다. 

2011년 9월의 첫 평양 방문을 시작으로 조선화 연구를 위해 6년에 걸쳐 평양을 9차례 방문하게 된다.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 들었지만

그 과정은 지난했다. 

불같이 덤벼드는, 그리고 남이 하지 않는 분야에의 개척에 강한 매력을 느끼는 그의 성정상 조선화 연구도 이제껏 아무도 하지 않았던 방향을

택한다.  책이 아닌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연구를 택했다.  평양미술계의 만수대창작사를 비롯한 여러 창작사, 조선미술박물관, 평양미술대학,

국가미술전람회장 등의 방문,  그리고 조선화 작가 인터뷰 등 철저하게 현장 중심으로 이어졌다. 

 

이는 이 분야 한국 학자들의 방북이 정치적 여건상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그의 평양미술 현장 연구는 한국미술사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어차피 남북의 미술사 통사는 북쪽 미술의 연구 없이는 완결될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명할 때,

몸으로 누빈 그의 아홉차례 평양미술계 탐방과 조선화 연구는 개인적인 성취를 넘은 범 반도적인 미술계의 귀중한 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이 휴전선으로 분단된 후 한국의 어느 학자도 할 수 없었던 일을 그는 홀로 이 일을 해내었다. 

미국시민이었기에 가능한 평양 방문이었고 현장 연구였다. 

 

그는 말한다.

“화가가 되기 위해 미국에 왔는데, 지금와서 되돌아보니 평양미술을 연구하기 위해 이 먼 길을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미국시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시기에 평양을 들락거릴 수 있었겠는가.   

또한 화가가 되었기에 첨예한 눈의 판단으로 곧장 조선화에 접근해 분석할 수 있을 거라는 든든함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내 작품만 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에,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6년이란 긴 세월을 미국에서 평양을 9번이나 방문할 엄두를

내었을까.  더구나 외부의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자비 연구여행을 다녀와야 했기에 많은 빚을 져야만 했다. 

American University Museum에서의 조선화 대형 전시를 기획하면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그래도 밀어부쳤다. 

너무나 하고 싶은 전시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못 말리는 열정에 희생이 된 가족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나는 무엇에 홀려 이 짓을 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조선화가 지닌 묘한 매력 때문이었고, 

또한 아무도 그 매력을 잡아내어, 밝히지 못하고 있는 환경이 안타까왔기 때문이었다. 

평양 방문은 매번 두려웠고 목숨을 걸어야 했다.   수많은 평양에서의 밤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것이 꿈이었나 한다.  새벽 4시에 들려오는

평양시내의 장엄한 종소리는 마치 깊고 긴 동굴에서 터져서 땅을 뚫고 울려 퍼지는 에밀레 종소리 같아 엄숙과 비장함을 불러왔다. 

그 종소리를 들으면서  아, 밤을 무사히 지냈구나.  오늘은 또 어떤 아슬아슬함을 겪게 될까. 

평양에서의 매일은 내 일신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초조와 불안을 늘 곁에 두어야 했던 무모를 저지르는 감행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양미술에 대해 한 가지라고 더 캐기 위해 혼신을 다 하는 노력은 때로는 위반의 레드라인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에게는 코리아반도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와 그 빚을 갚는 심정이었다라고나 할까.  태생의 피가 당기는 인간적 의무가 아니었나.”

평양 현장에서 채득(採得과 체득體得)한 정보는 평양인민대학습당에서의 자료 열람과 서울국립중앙도서관 북한자료센터의 자료를 중심으로,

그리고 미국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희귀자료 보충으로 학술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심도 깊은 제련의 과정을 거쳤다.

조선화 연구 내용에 대한 강연을 미국의 하버드 대학, 존스합킨스 대학, Watermill Center 등 주요 대학과 문화센터에서 진행해 오던 중

2016년 워싱턴 American University Museum의 초대로 야심만만한 조선화 전시를 기획하게 된다.

이 전시는 Contemporary North Korean Art: The Evolution of Socialist Realism 이라는 타이틀로

미국 최초의 대규모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을 선보이게 된 획기적 기획이였고, 

BG Muhn을 조선화전 큐레이터로서 국제 무대에 알리는 첫 전시였다.

그의 조선화 연구는 2018년 봄, 서울에서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서울셀렉션)를 한글로 출판하게 되면서 일차 정리된다. 

7년간의 평양미술 연구 중 조선화만 따로 분리하여 집필한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는 평양미술계를 심층 취재 탐구한 최초의

조선화 연구서가 되었다. 

또한 코리아반도 미술사에서 연구의 맥이 끊어진 동시대 평양미술의 현장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세종도서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문체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해외번역 지원금을 받아 영문으로 된, 

North Korean Art: The Enigmatic World of Chosonhwa (2019, Seoul Selection)로 이어져 Amazon 도서목록에 올라있으며,

해외 학자들의 조선화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2021년 출판되었다.  

재일 미술사학자 백름 박사의 번역으로 도쿄의 셰이도사(靑土社)가 출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막바지였던 2022년 여름, 문범강은 일본어판 출판기념 조선화 강연을 교토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서 하게 되었다.  

한국어-일어 동시 통역으로 진행된 이 강연에는 많은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처음 대하는 조선화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그는 이 강연이 지난 10년간 해온 강연 중 가장 감명 깊었다고 말한다. 

 

2018년 문범강은 광주비엔날레, 7개의 본 전시 중 하나였던 조선화전 큐레이터로 선정된다. 

North Korean Art: Paradoxical Realism 이라는 타이틀의 이 전시를 통해 조선화로 제작된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정수인 집체화를

포함한 대규모 평양미술을 소개했다. 

광주비엔날레의 조선화 전시는 한국내 언론의 집중적 조명뿐 아니라 많은 해외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일본 아사히 신문, 독일 Die Zeit, 영국 The Economist  및 Contra Journal 등 수많은 국외 언론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는 광주 전시 현장에서 큐레이터인 문범강을 인터뷰하여, 

2018.9.19일자로  조선화 전시를 한 면 전체 보도하는 획기적 지면 할애를 했다.  이는 한국미술 역사상 전대미문의 대대적 보도였다. 

이로 인해 광주비엔날레 조선화 전시는 코리아반도 미술사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미술의 세계적인 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지난 12년간 문범강은 코리아반도 역사의 숨가쁜 소용돌이 속에서 이런 일을 해왔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조선화 연구와 전시를 통해서

무엇을 진정 원하고 있는가.   오직 한 가지다.

평양의 조선화도 코리아반도의 주요 문화유산이라는 그의 생각을 알리는 일이다.

이를 통해 조선화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재진행형인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대단한 꽃이라는 사실을 세계미술사에 등재시키는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집념을 펼치기 위해 그는 화가로서의 본업도 잠시 뒤로 미루어야 했던 지난 10년을 아쉬워 하지 않고 있다.

 

* (그는 북한, 한반도, 남조선 등의 어휘는 대단히 모순을 지닌 개념이라고 보고 있다.  편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명백한 오용이다.  

    문범강은 강연을 통해 이 잘못된 개념을 거듭 지적해왔다.   그는 '한반도'라는 부정확한 표현의 대안으로 '코리아반도'를 사용하고 있다).          

   

  (인터뷰, 글 정리: 설화랑)      문범강 (1) 로 되돌아 가기 <   

​연합뉴스 TV 인터뷰                                                민주공대 김민석(현 국회의원)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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